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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약 본문

건강하게 살기 쉽지 않네/우울증 관리설명서

우울증 약

如雲 2020. 3. 11. 20:59

예전에 페루에 간 꽃보다 청춘에서 윤상이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다니까 유희열과 이적이 '좋은 뜻'으로 어서 우울증도 낫고 약도 줄여나가라고 조언을 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반응을 많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왜인지 우울증 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죠. 우울증을 의지로 이겨내라는 함의도 느껴지고요. 정신질환이나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많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우울증 약을 먹으라는 쪽입니다.

도저히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싶으면 기어서라도 병원에 가고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으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몇날 며칠 누워만 있다면 끌고 가세요. 사랑과 애정으로 우울증을 이겨내려고 하지 마세요. 우울증은 결국 당사자만의 문제라 도와줄 순 있어도 고쳐줄 순 없습니다.

 

물론 나에게 맞는 병원(의사)을 찾고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그래도 한번 찾으면 제 발로 걸어서 병원에 갈 수 있어요. 그러니 약 먹으세요. 약 좋아요.

 

우울증은 대부분 어깨 위에서 일어나는 (더 정확하게는 일어나지 않는) 문제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뇌가 특히 전두엽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지 않거나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해도 뇌가 주는 신호를 신경전달물질이 받아서 몸에 보내줘야 하는데 그 과정이 고장이 난 겁니다.

의지가 아무리 뛰어나도, 천년을 뛰어넘는 사랑도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할 순 없습니다. 의지나 사랑으로 호르몬을 분비할 수도 없고 전두엽을 활성화 시킬 수 없어요.

그렇다고 약이 우울증을 낫게 하진 않습니다. 약은 전두엽이나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뇌와 몸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국 환자 본인이 결정할 일입니다.

 

도움에도 순서와 때가 있는데 전문가와 약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사랑과 의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일단 전문가의 도움부터 받으세요.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의사가 굳이 우울증 약이 필요없다고 한다면 안 먹어도 되요. 그리고 요즘 병원은 환자가 거부하는 처방을 억지로 권하지도 않습니다. 의사나 상담사가 삶의 해결책을 주거나 뭐를 해라 마라 하지도 않아요.

 

친구가 독박육아로 인한 수면부족으로 극심한 산후우울증에 시달릴 때 병원에 갔더니 '모유수유를 하니 약을 줄 수 없다'고 했다더라고요. 친구는 그렇게 그냥 집으로 왔고요.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그 친구는 우울증에 대해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참고 참다 멀리 사는 저에게 연락을 했던 거였어요. 그 때 했던 대화였습니다.

 

"네가 모유수유를 안하면 누가 널 괴롭혀?"

"아니."

"그럼 모유수유 하지 말고 애는 분유 먹이고 너는 약 먹어."

 

요즘 분유 좋게 나온다는 둥, 우울증 걸린 엄마가 애를 보면 뭘 얼마나 잘 보겠냐, 그리고 호르몬이 깨져있을텐데 그 모유는 과연 좋겠냐는 등 뭐 그런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애도 부모님과 남편에게 넘기라고 밤엔 무조건 자라고 했어요. 뇌를 안정시키는데 수면처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뇌를 쉬게하진 않으니까요. 이런 말은 친구라서 할 수 있었던 말이지 의사라면 못했을 겁니다.

어쨌든 친구는 한 달도 안 되서 컨디션이 돌아왔고 석 달이 안 되서 산후우울증이 싹 나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싹 까먹고 얼마 전에 둘째를 낳았습니다-ㅠ-

 

어쨌든 의지와 사랑은 조금 아껴두세요. 억지로 돋운 의지나 끝없이 참기만 하는 사랑은 결국 고갈되고 사람은 지칩니다. 그럼 우울증이 더 심해지겠지요. 쉽게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인데 버텨서 고생하지 말아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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