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5/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s
more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인사이드아웃

친구가 우울증이라고 고백한다면 본문

건강하게 살기 쉽지 않네/우울증 관리설명서

친구가 우울증이라고 고백한다면

如雲 2020. 7. 22. 23:17

저는 언젠가부터 주변에 우울증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럼 대체로, '우울증인 거 몰랐다.' 혹은 '우울증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 돌아옵니다. 이거슨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울증은 우울한 거라고 생각하고 우울증 환자는 웬종일 우울해하거나 울거나 하여간 감정기복이 심하고 자살하겠다고 주변 사람을 협박하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음?)

 

제 친구의 친구가 이런 상태라고 하면서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는데 저는 '그 사람은 우울증이 아니라 너를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사람이지 친구가 아니니 그만 만나'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냥 들어도 에너지가 너무 넘치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정성까지 들이더라고요. 무기력증 환자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이죠. 다른 정신과적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여하튼 우울증은 아니었어요.

 

저도 그렇지만 우울증을 대놓고 보여주긴 힘이 듭니다. 우울증은 특성상 같이 사는 사람은 알 수 있지만 같이 안 살면 알아채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같이 살면 어떻게 아냐고요? 도대체 뭘 제대로 못하고 금방 좌절하고 뻗어버리거든요. 여기서 '뭘'이란 인간다운 생활입니다. 무슨 사업을 잘하고 못하고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일상생활을 못해요. 사회생활은 당연히 못하고, 일상생활조차 못하니 밖에 기어나가질 않아(못해) 집 밖에 있는 사람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약속을 해놓고 번번히 깨버릴 수는 있는데, 보통은 약속 자체를 아예 안 만들거나 약속은 멀쩡히 지키고 잘 놀고 와서 집에 와서 뻗어버린다거나 그럽니다.

 

우울증이 있다고 스스로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말해도 우울증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대체로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네가 왜 우울해?' '멀쩡한데, 뭐.' '금방 극뽁할 수 있을 거야.' 등등.

우울증이 심한 상태면 무슨 소리를 들어도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우울증에 대한 몰이해에 기반한 이런 말과 반응은 고백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무슨 정답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그런 고백을 한다면 일단 당신을 믿고 좋아한다는 뜻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마음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고마울 수도 있겠죱? 그럴 마음이 든다면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딱히 공감할 필요도 없고 반박할 필요도 없고 그냥 얘는 그렇구나 하고 듣는 거 말입니다.

 

물론 위의 예처럼 전혀 우울증이 아닌데 우울증이라고 떠들고 다니며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 우울증이라고 해도 주변 사람을 괴롭힐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죠. 누구도 어떤 이유로 다른 사람을 심리적으로 괴롭히면 안 됩니다. 우울증이라고 딱히 도와줄 필요 없고요, 도와주기도 힘들어요. 물론 동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우울증도 어떤 사람의 특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평범하게 대하면 됩니다. 

 

가족이더라도 딱히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가족구성원이 우울증이라 병원이나 상담을 받겠다는데 남의 눈이나 사회생활 등등의 이상한 이유를 들어 뜯어 말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가 워낙 많아서요.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도대체 우울증이 뭔지 알아보면 환자를 상처입히지 않는 언행을 하지 않을 수 있겠죠. 베스트시나리오는 같이 병원이나 상담처를 알아보고 초창기엔 같이 내원도 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 좋을 것입니다.

 

우울증(을 비롯해 다른 정신병)을 이유(=핑계)로 주변을 괴롭히는 환자라면 가족이든 친구든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딱히 감수성이 뛰어나서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환경이 나빠서 우울증에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우울증이 나쁜 것도 아니지만 그것도 유세 부릴 일도 아니죠.

 

우울증이 유전인지 아닌지 아직 알 수는 없습니다. 유전이 되는 정신병이 있긴 합니다만, 우울증의 유전인자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몇 년 전에 제가 찾아본 바로는 그랬습니다. 지금쯤 찾았으려나요?) 여튼, 못 찾았다는 이야기는,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발병할 가능성이 높아서 '아마도 유전적 영향이 있지 않을까'라고 추정하고 있는 것이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감정은 전염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남에게 퍼붓고 내내 지랄염병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그 사람이 우울증이든 아니든 주변 사람을 우울증에 빠뜨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직장 상사가 이런 개진상이라고 생각해보세요, 혹은 진상 손님을 내내 받아야 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우울증의 원인은 내부적일 수도 있지만 외부적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인이 우울증이라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주변인이 세트로 다 우울증에 걸리는 겁니다. 주변 사람이 아프다면 성의껏 도와주되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요. 이 병은 마음의 병도 포함됩니다. 아무리 좋아하고 사랑해도 체력이나 마음이 닳아 버리면 버틸 수가 없어요.

 

 

편견없이 평소처럼,  

적당한 배려와 적당히 거리.

서로를 위하며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s